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(행 26:24)
김연아 선수가 스케이트장을 달린 거리를 모두 합하면 지구 세 바퀴 반이라고 합니다. 자그마치 한해 평균 3,200번 넘어졌다고도 하지요. 소위 ‘스케이트에 미쳤다’라고 할 만할 정도입니다.
‘예수 그리스도에 미친’ 사람도 있습니다. 허드슨 테일러라는 사람이 중국의 난징 아래 ‘장강’이라는 마을에 들어가 복음을 전할 때 아내와 자녀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났습니다. 그는 자신의 슬픈 심경을 이렇게 일기로 적었습니다.
“낮에도 온종일, 그리고 저녁에도 내 딸 음성이 그립다. 그러나 그 아이를 심은 정원사가 오셔서 그 예쁜 장미를 뽑아가셨으니….”
테일러와 같은 사람들은 또 있습니다. ‘예수 그리스도에 미쳐서’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하러 들어왔다가, 지금 양화진 선교사 묘역에 잠들어있는 분들 말입니다. 사도 바울도 “미쳤다”는 평가를 들었습니다. 사도 바울이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자 베스도가 외칩니다. “바울아, 네가 미쳤도다.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(24절).” 그렇습니다. 그는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께 미친 사람이었습니다. 하나님 됨을 포기하고 죽기까지 십자가를 지시며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그 크신 사랑에 미친 사람이었습니다.
사랑은, 사람을 깊고 숭고한 의미에서 미치게 합니다. 이를테면 평범한 인간 이상의 행동을 하도록 이끕니다. 몇 년 전 중국 스촨성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몸을 구부리고 죽은 엄마 품에서 살아있는 갓난아기가 발견되었는데, 그 엄마 휴대전화기엔 이런 문자가 찍혀있었다지요. “아가야! 네가 만일 살아난다면 이 엄마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잊지 말아다오.”
예수께서는 그 엄마보다 더 큰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해주셨습니다. 그 큰 사랑에 미치지 않으면 예수님을 믿는 일처럼 힘든 일은 없을 것입니다. 그러나 그 예수님의 사랑에 미치면 교회공동체에서의 사귐과 섬김의 신앙생활이 세상적 출세와 성취보다 더 복되고 뜻깊게 느껴집니다. “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,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,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(고후 5: 13∼14).”